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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심 좋은 청정 지역 양구(楊口)
기행
군에 버금가는 지방 행정 단위였는데, 여느 현에서는 현령으로 불리는 관리의 우두머리를 두었
고 아주 작은 현에는 현령보다 낮은 직급인 ‘감무’를 관리의 우두머리로 두었었다.
1894년에는 양구현 이었으나 그 뒤로 여러 곡절을 겪었고, 1908년에는 아예 이름조차 없어지
고 화천군에 합쳐진 적도 있다가 도로 양구군이 되었다. 그런 탓인지는 몰라도 이곳 사람들은
제 고장이 화천군과 따로 떼어진 군이기는 하지만 화천군 사람을 마치 친한 이웃 사람 대하듯
한다. 그런 마음은 강원도의 여러 군끼리 겨루는 운동 시합을 할 적에도 잘 드러난다.
양구군은 임야가 74%이고 농경지는 12%에 불과하나 푸른 산과 맑은 물, 그리고 잘 보존된
청정한 자연환경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임산물이 많이 난다. 비록 질펀한 들판은 없지만 “양구
모래 한 말은 쌀 한말하고 안 바꾼다.”는 말을 들을 만큼 이 곳은 땅이 기름지다. 그래서 이곳에
서 나는 쌀은 품질이 뛰어나서 조선 왕조 시대에는 경기도 여주쌀이나 이천쌀과 함께 진상품으
로 바쳐지기도 했고 해방 전까지만 해도 서울이나 춘천 같은 곳의 쌀가게에서 ‘양구쌀’이라는
팻말을 써 붙이고 여느 쌀보다 값을 비싸게 쳐서 받기도 했다.
논밭이 기름지고 먹을거리가 넉넉한 농촌이 거의 그렇겠지만 이곳은 사람들의 인심이 순박하
여 강원도 여러 고을 사람들의 기질을 나타내는 타령조의 노래에 ‘양구 군민’이라는 구절이 있을
만큼 예로부터 문을 열어 놓고 자도 도둑이 안 들어 편히 잘 수 있는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이곳의 산은 대부분이 6.25 전쟁 때에 피로 물든 싸움터였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산미나리,
더덕, 도라지, 송이버섯, 고사리, 두릅 같은 산나물을 캐러 나선 아낙네들이 이 전쟁 때에 죽은
사람의 해골이나 뼈 부스러기가 소롯이 남아 있는 것을 더러 볼 수가 있었다.
6.25 전쟁 전에는 이름이 없었거나 달리 불리던 산등성이나 산봉우리가 하루에도 몇 차례
씩 주인이 바뀌는 싸움이 벌어진 뒤에 그때의 처절함을 암시해 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이
바로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펀치볼 분지, 크리스마스 고지, 유엔 고지 같은 것인데 특히,
방산면 현리에 있는 ‘피의 능선’과 그 북쪽에 11㎞에 걸쳐서 줄지어 늘어선 산봉우리들을 이
르는 ‘단장의 능선’은 전쟁이 한창 막바지로 치닫던 1951년에 이 나라에서 벌어진 가장 치열
했던 싸움터이다.
그해 8월 17일부터 9월 5일까지 피의 능선에서 계속된 싸움에서, 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미
국의 역사학자인 티 알 페렌바크가 쓴 ?이런 전쟁?에 따르면 “한국군과 미군 제2사단은 전선을
따라서 자리 잡고 있는 고지 몇 백 개 중에서 보잘 것 없는 이 둥근 언덕 세 개를 차지하기 위해
서 4천명도 더 되는 아군 병사들이 목숨을 바쳤다”고 한다. 그때에 공산군도 4천명이 넘게 죽었
고 만 명이 넘게 다쳤다. 이곳은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린 곳이어서 종군 기자들이 세계 제1차
대전 때에 독일 서부 전선의 싸움터에 붙은 이름을 본 따서 ‘피의 능선’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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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재정공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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